밤 2시 30분에 입었던 옷을 모조리 다 벗고 알몸으로 선풍기를 꺼냈다.
드라이버로 모터 커버를 분리하고, 망을 때어내고, \’날개\’를 때어냈다.
물을 적시고 수세미로 쌓였던 먼지를 벗겨주고 그런 것들.
끝나고 3시였다.
그 후로 1시간 12분이 지났지만, 그 시간 동안 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억나는 거라곤 선풍기 밖에 없다.
작년 여름엔 강한 햇살을 받으며 선풍기를 닦았다.
미적지근하게 시작된 여름이다.
아파트로 돌아가보니 쌍둥이는 정어리 통조림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침대에 누워 쿡쿡 웃고 있었다.
\”어서 와요.\”
\”어디 갔다 온 거죠?\”
\”역.\”
나는 넥타이를 풀고, 쌍둥이 사이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몹시 잠이 왔다.
\”어느 역인데요?\”
\”뭐하러 갔다 왔나요?\”
\”먼데 있는 역이야. 개를 보러 갔었지.\”
\”어떤 개?\”
\”개를 좋아해요?\”
\”하얗고 커다란 개였어. 그렇다고 개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야.\”
내가 담배에 불을 붙여 다 피우는 동안, 둘은 잠자코 있었다.
\”슬퍼요?\”
라고 한쭉이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만 자요\”
라고 한쪽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잠들었다.
잠을 못이루고 뭔가 의미없는 짓을 하며 뒤척이다 겨우 정오가 되기 전에 잠들다.
C군이 작업실 지나가는 길에 들려 우유를 주고 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마치 껍질을 벗겨낸 살에 소금을 뿌려댄듯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없이 묵도하다.
저녁쯤에 되어 J군이 들렸고 그 후 H군이 작업실에 들리다.
바카디 151을 더블 스트레이트 잔에 부어 마시다.
조금 늦은 저녁이 되어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먼지가 쌓인 카메라를 털어준 후 바깥으로 나가다.
샵에 들려 돌려줘야 할것을 주고난후 K군집에 들리다.
다시 나선후 김밥을 썰어 볶아낸 포장마차 김치볶음밥으로 오늘 첫끼를 때우다.
아주머니께서 오뎅2개의 값은 서비스라며 받지 않으시다.
K군의 작업실에 들려 맹맹하게 뽑혀진 블루마운틴을 마시며 3년 만에 낸 골딘 사진집을 다시 보고, 조엘 피터 위트킨, 로버트 메플소프의 사진집을 훑어보다.
먼지가 쌓여있던 카메라의 셔터를 거의 2주만에 누르다.
작업실로 돌아와서 모리야마 다이토의 사진집을 다시 훑어보고, 무소유를 다시 읽다.
몇일동안 간헐적으로 날 괴롭히던 편두통이 다시 시작되다.
철제 약품 캡슐에 들어있는 진통제를 두알 삼키다.
2주일 만에 처음으로 필름을 갈아 끼우다.
바카디 151을 더블 스트레이트 잔에 부어 마시다.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러한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살아갔던 이유는 아마, 내가 교만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그 무엇도 아무것도 실로 변한건 없어서,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어쩌면 조금정도는 일어서서 한걸음 한걸음 다시 걸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무엇하나 변한건 없지만, 무엇하나 알게된 것, 느끼게 된것 없지만 말이다…..
비가 오면 이번에야 말로 꼭 카메라를 들고 수분이 말라버린 내 몸을 다시 적셔야 겠다.
베트남에서 아오자이를 입은 십대 소녀를 만나는거지.
프랑스 혼혈의.
스콜이 내리는 속에서 멍하니 하얗게 젖어 스쳐가는 소녀를 만나는것도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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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무것도 판단 할 수 없고, 아무런것도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한 메모.
마치.. .식물인간이 된 기분이다.
사진에 대한 나의 무력감은 마치 5살된 꼬맹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주저앉아버리는 그런 기분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전할 수 없고, 아무것도 전달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동할 수 없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한 무력감이다.
물론 그런게 아니길 바라고 있으며,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사진가와 사진들이 이 세상엔 존재 한다.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