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하릴 없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싼값에 팔아넘기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얼음장 같은 오한이 머리꼭대기에서부터 양팔을, 등줄기를,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그럴때 문득 두 단어가 심장에서 맴돈다.
‘사랑’과 ‘마음’
너무나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아파서, 아파서..
꺽꺽 거리는 숨소리를 억지로 폐속에 밀어넣으면서, 터져나올려는 눈물을 참을려고 숨을 억지로 밀어넣으면서, 차가운 피는 귓볼과 머리로 붉게 몰리면서, 난 썩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이리저리 꼬여있고 비틀어진 놈이기 때문일까.
복잡하고 꼬여있고 비틀어진건 정말 질색이다.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
오랜 기억들 위에 기억의 변형이라는 뿌연 먼지를 덮어줘서 그런지 모르겠다. 오래 전 나는 복잡하지 않았고, 꼬여 있지도 않았고 더구나 비틀어 지지도 않았다고, 난 기억한다.
때문에 그 당시 난 복잡하고 꼬여있고 비틀어져 있었다.
지금의 나 스스로를 보고 있다 보면, 좀체로 알 수가 없어진다.
이럴땐 미친듯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고 싶다.
너라고 하는 사람은 여전히 좋아 할 수 없는, 정 떨어지는 놈이다.
문득 문득 느껴지는 너의 오만함은 언젠가 너에게 극심한 고통과 파멸을 안겨 줄 것이다.
필름 현상이 떡이 되었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몇년 동안 해왔던.
시커멓게 올라와버린 필름.
어째서?
현상기에 있는 워터재킷의 온도를 재어봤다.
32도.
아아.. 그래. 당연하군. 당연히 시커멓게 될 수 밖에.
그리 대단찮은 사진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선 대단히 중요한 사진이다.
너무나도 강렬한 분노때문에 필름 현상기를 때려부술뻔 했다.
만약 옆에 망치라도 있었으면 철저하게 부셔지진 않았을까 싶었다.
6년 넘게 계속 달달달 하고 돌렸던 현상기. 그래. 고장날 법도 하다 싶다. 순간 사진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치우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담배를 한대 태웠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요즘 현상기 가격이 얼마정도 하는지를 찾아봤다. 내가 쓰고 있는 기종은 단종이 되었다. 내가 쓸만한 정도의 현상기 가격을 봤는데, 왠지 더 우울해졌다.
필름 상태를 보아하니, 파머스 감액력 따위로 구제 될 만한 선을 넘어섰다. 쓸수 없는 원고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건지. 그래 인과응보 인지라 필시 내가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보다도 머리속을 아주 아득한 느낌으로 어쩔줄 몰라 하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그래 평소처럼 워터재킷의 온도도 분명히 확인했다. 현상액의 온도는 말할것도 없다. 아주 정확하게 세심한 신경을 썼다.
아마도 내가 온도를 쟀던 그 시기에 마침 워터 재킷의 온도가 맞아떨어졌던가 보다.
도대체 이 강렬하고도 토해낼곳도 없는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내가 좀 나쁜놈이기도 하고, 성질머리도 더럽고, 남에게 아픈일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댓가를 치른다른건 너무나도 고약한 일이다.
앞으로 현상해야 할 필름이 52롤.
손으로 현상해서는 안되는 필름들이 대부분이다.
입자가 곱게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중고 현상기 가격을 알아봤지만, 그래도 대강 100만원 정도는 지불해야 될성 싶다.
어쨌던, 지금 있는 현상기를 (A/S 같은건 애당초 무리다) 버리는 셈 치고 뜯어서 고쳐봐야 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너무나도 탈진이 되어버려, 그냥 왠지 손을 놓아버리고 싶다.
아아… 정신차리고 힘을 내야지.
언제까지고 이럴순 없잖아?
하지만… 아무래도 이 충격이 몇일은 가지 않을까 싶다.
아아.. 날씨 좋다.
여름이 끝났다.
쾌청한 하늘,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는 햇살, 시원한 바람 그리고 파란 하늘.
자전거의 폐달을 밟으며 가른 바람속에 가을이 정말 잔뜩 있었다.
아쉽지만… 가을은 사진찍기 좋은 계절이니까 말야. 라고 생각하며 끝나버린 여름을 보냈다.
벨비아 필름을 카메라에 넣고, 눈이 부실정도로 파란 하늘 아래, 눈이 아플정도로 빨간것을 넣으면 이쁘게 찍혀 나오는 가을.
트라이 엑스 흑백 필름을 카메라에 넣고, 눈이 부실정도로 파란 하늘 아래,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보이는 레드 필터를 끼우고, 눈이 아플정도로 하얀 구름을 넣어 찍으면, 검은 밤 같은 하늘에 가슴이 부서질정도로 하얗게 떠있는 구름.
하지만 이런것 보다도. 주머니가 많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서 좋다. 역시 사진찍을땐 주머니가 많은 옷이 좋거든.
잠을 자려고 채비를 하던중, 오랜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을때쯤 녀석이 말했다.
외롭다. 넌 외롭지 않냐. 라는 느낌의 이야기를 했던것 같다.
그래서 난 말했다.
아아. 그래 나도 외로워. 누구나 외롭지. 당연한거아냐. 너도 이미 알고 있는거쟎니.
그 말을 끝내고 전화를 끊은 후, 한참을 생각했다.
그래… 당연한거지…….. 라고.
편의점엘 들려서 버드 한병, 88 골드 1갑을 샀다. 점원에게 맥주 두껑을 열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길가다가 어떤 분에게 불을 빌려 담배에 붙였다.
40계단 밑둥에 앉아 담배를 피고 버드를 마셨다. 갑자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자 맥주를 들고 천천히 작업실로 올라왔다.
인격수양이 많이 부족한 인간이라고 다시금 느꼈다.
강렬한 분노를, 기껏해봐야 맥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것이 고작이다.
목요일. 이제 훈련 마지막 날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정말 자기중심적인 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