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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든 생각인데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순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하늘은 Gray.

토요일 새벽 4시 43분
작업실 바깥으로 보이는 어슴푸레 자주색도, 파란색도 아닌 회색이 온건히 덮고 있다

포근하다.

짜증난다.

난 괜찮다.

하지만 짜증나는건 어쩔수 없다.

필히 내가 성질이 온순치 못한 탓이 제일 크겠지만, 사람을 기분나쁘게
혹은 짜증나게 하는데엔 참으로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것을 세삼 깨닫게 한다.

모니터 화면을 조정해주세요.

‘어떤분이 대뜸 원주씨 사진은 톤이 좀 어두운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저의 사진 분위기가 좀 어둡긴 어둡죠’

‘아 그 이야기가 아니라, ‘톤’이 어둡다구요’

‘네?’

"쉐도우 부분의 손실이 좀 많은것 같더라구요’

‘네? 그럴리가 없는데….’

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본인은 colorvision사에서 나온 Monitor Spyder라는 모니터 캘리브레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캘리브레이터라는것의 역활은 빨간색을 지정하면 그 ‘지정된 빨간색’이 나온다는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사용자가 요구하는 정확한 색을 모니터로 출력해주는 장치라는건데, 이 캘리브레이션 과정에선 당연히 Red,Green,Blu를 기본으로 한 캘리브레이션이지만, 캘리브레이션 과정 자체도 최초에 R,G,B검출만 한 후에 본격적인 과정에서는 실지로 그레이 스케일만으로 가지고 모니터를 조정하게 된다.

보통 캘리브레이션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에보다 모니터가 밝아보인다고 말들한다. 즉 모니터가 가지고 있는 쉐도우 다이나믹레인지를 제대로 성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어도비 감마를 이용한 간이 캘리브레이션도 돈 한푼도 들이지 않는 비교적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정도만 하더라도 모니터의 쉐도우 다이나믹 레인지를 제대로 찾아서 써먹을 수 있다.
비싸게 주고 산 모니터인데 성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돈 아깝지 않은가?

내 모니터는 캘리브레이션 된 모니터이므로 쉐도우의 재현이 요구하는대로 정직하게 나온다. (제대로 나온다는것과는 다른 의미다) 그래서 일반적인 모니터에선 쉐도우 디테일 혹은 톤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묻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니터의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하다 못해서 모니터 조정부분에 있는 콘트라스트와 브라이트니스만 조정해도 제법 괜찮다.

adobe 감마를 이용한 간이 캘리브레이션이라도 하는것이 좋다.
그게 귀찮다면, ‘Photo…’란에 있는 그레이스케일 챠트를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모니터 콘트라스트는 최대로 올리고, 브라이트니스는 그레이스케일 챠트를 참고로 해서 조정해주시길 바란다.

라디오.

저녁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컴퓨터의 배치를 바꿨다.
왼쪽에 있는 컴퓨터를 오른쪽에 넣어두고 그 남은 공간에 외장 시디레코더와 외장 하드, 그리고 그 위에 필름스캐너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골판지로 만든 스캐너 먼지 커버를 씌워주었다. 그리고 레이저 프린터의 배치도 바꿔주었다. 비교적 보기도 좋고 배치도 기능적으로 바뀌었다.

이럭저럭 대강 큰걸 정리하고 배가 고파서 밥을 대강 챙겨먹었다. 밥을 한지 제법 되어서 그런지 밥에서 약간의 쉰네가 날려고 한다. 양이 제법 남았지만, 버릴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요즘엔 이런 일이 많은데 요즘 내가 살이 다시 찌고 있는 이유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담배를 한대 물고, 컴퓨터의 배선들이 정확하게 연결되었는지,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을 했다. 그 참에 컴퓨터에 연결한 라디오를 켰다. 몇달만에 녀석이 잠을 깬듯 하다.

내 라디오는 상당히 좋은 놈이다. 크기는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디자인은 무척이나 심플하다. 80년대의 기계를 설계할때의 느낌이 그대로 배여있는 놈이다. 튼튼하고 심플하고, 기능적이다. 바깥에 튜너 검출부분은 디지털 방식이다. 하지만 튜너 셀렉터 자체는 순수한 아날로그방식이다.

내 라디오 위에는 전화기가 한대 놓여 있는데 가끔씩 통화하다 보면 잡음이 너무 많이 끼어서 목소리를 확인하기 힘들정도일때가 자주 있다. 그때마다 난 전화기가 놓여진 라디오를 벽삼아서 전화기를 내려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고나면 잡음은 사라지고 깨끗한 통화가 가능해진다. 그 세월동안 전화기 밑에 놓여있는 라디오는 셀수도 없이 전화기에게 맞았다. 수백 수천번은 족히 맞았을것이다.

오랫만에 라디오를 켰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듯, 조용히 전원이 올라가고 주파수를 표시하는 마치 약간 부끄러운듯한 느낌의 녹색 LED가 숫자를 펼쳐준다. 약간은 조심스럽게 튜너 노브를 돌려주고 주파수가 제대로 맞는지를 알려주는 인디케이터가 부드럽고 이쁘게 떠올라준다.

나오는 음악들은 전부 내가 처음듣는 음악들이었다.
뭔가 다른 일들을 하더라도 라디오는 부담이 없다.
라디오를 듣는다, 다른일을 한다의 두가지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을 하는것이다.

그렇게 별 간섭없이 부드럽게 내가 하는 일을 도와준다.

어쩌다 정말 나에게 맞는 좋은 음악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게 바로 인연이라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이럴 경우는 정말 좋다.

그동안 전화기에 많이 맞았다.

너무나도 아무말 없이 묵묵히 아주 깨끗한 음질로 라디오는 나를 부드럽게 위무해준다. 왠지 미안하다.

그래서 앞으론 전화기를 때릴땐 라디오보다는 책상 모서리를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냉장고.

나에겐 대략 20여년은 넘은 아주 낡아빠진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세월의 흔적과 나의 관리부족으로 인해서 외관은 지저분 했지만 성능은 여전히 쓸만했다. 냉동실엔 얼음이 나오고 냉장실은 맥주가 충분히 차가워질만큼 시원했다.

몇일전 잠에서 깨어 일어나보니 머리가 무겁고 욱신거렸다. 몸은 천근같이 무겁고, 뇌가 흔들거렸다.

프레온 가스 냄새가 가득했다.

그렇게 급사하듯 냉장고는 사망했다.

새로운 냉장고를 한대 넣었다. 예전것보다 크기는 작지만 성능은 훨씬 좋았다. 전기먹는것도 예전것과 비교할바가 아니었다. 전기를 작게 먹는 작고 성능좋고 깨끗한 냉장고.

사망한 냉장고를 영차 영차하며 바깥으로 날랐다. 그리고 버렸다.

그 자리에 새로운 냉장고가 들어왔다. 기분이 좋았다.

소파.

나에겐 소파가 하나 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같이 지냈는진 정확하진 않다. 대강 어림잡아 12년 혹은 14년 정도 같이 지내왔던것 같다.

그 소파는 항상 그랬다.

좋을때도, 흥분할때도, 참담할때도, 피곤해서 쓰러질때도, 기분이 좋을때도 언제나
그랬듯 항상 똑같았다.

언제나 부드럽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아무런 말 없이 아무런 소리 없이 항상 감싸주었다. 관리를 하질 못해서 바깥에 있는 가죽 껍질이 말라버려 쩍쩍 갈라지고, 하나 둘씩 벗겨져가는 와중에서도 항상, 언제나 그랬듯 아무말 없이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수많은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머물고 혹은 사라지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파 참 편안하고 좋다고 그랬다. 난 그런 소리를 들을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어떤이는 그 소파엔 마법이 걸려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동의했다.

시간이 흐르고 더 흘러서 지금 작업실로 오고, 소파의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에서도 난 그 소파를 버릴 수 없었다. 시장에서 산 싸구려 천조작을 주섬주섬 들고와선 둘러싸고 그랬었다. 두번정도 색깔이 바뀌었다. 그래도 소파는 아무말 없이 여전히 처음과 똑같은 편안함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오늘, 정체 모를 소파를 하나 받아 들였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소파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그 잠깐 5분의 시간동안 소파는 이미 쓰레기차 뒤에 붙어있는 유압식 압축기속에 부서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건 압축기의 단단한 무쇠만 보일 뿐이었다.

남아 있는 자국도 없고, 10년이 넘는 나와의 인연속에, 언제 그곳에 버려졌냐는듯 홀연히 사라졌다. 흔적도 남지 않았고, 리폼 한답시고 거적대기를 둘러싼 천조각 하나 찾질 못했다. 기껏 가지고 간 카메라로 전혀 상관없는 쓰레기들만 연신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열했다.

걷다.

비교적 옛날 (이라곤 해도 불과 몇년전의)엔 난 천천히 걷고 그랬다.
꼭 풍광이 좋은곳뿐만이 아니라도, 매연냄새가 가득한 남포동에서든 바닷가에서든
나의 걷는 속도는 느릿했다.

빠른걸음으로는 모르는 풍경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면 주위의 풍경들이 왠지 달라져 보인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군대를 다녀오고 전역을 한후 시간이 제법 지났다.
갑자기 깨달은 사실인데 난 걸음이 예전에 비해 제법 빨라졌다.

가끔 혼자 길을 나설때 나의 걸음은 예전의 것과 비교하자면 마치 달리는것과 비슷한정도로 빨라질때도 있다.

또한

가끔 혼자 길을 나설때 나의 걸음은 거의 멈춰있는것과 마찬가지 일정도로 천천히 걸을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첫째 조건은 같이 걷는 사람이 없어야만 할 수 있는것이다. 아무래도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어느정도 페이스를 맞출수 밖에 없는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불쾌함 혹은 귀찮은 같은건 그다지 없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는것은 혼자걷는것 이상으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난 어떠한 하나에 생각이 빠지게 되면 다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라던가 호의라던가 그런것은 가슴속에 있음에도, 심장은 나에게 그 어떠한 생각 하나에 집중이 되어버리도록 만든다.

그다지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선풍기를 꺼내다.

삼 사일전쯤이었을까.

딱히 날씨가 덥진 않았지만, 선풍기를 꺼냈다. 먼지쌓인 비닐을 벗겨내고, 뭍어있는 먼지를 대강 닦아내고, 전원을 올렸다. 1년 조금 안되는 시간만에 선풍기는 잠을 깨고 일어나서 바람을 만들어 주었다.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비가 온다. 선풍기는 잠을 자고 있고, 약간 쌀쌀한 날씨덕분에 가스히터를 틀었다.

좋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선풍기를 조금 늦게 꺼내도 괜찮치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엎어치나 돌려치나 꺼내야 하는건 매한가지다.
‘어짜피’ 꺼내야 하는것 이기 때문이다.

두둥실 코끼리

밤 3시 반쯤. 담배가 떨어져 편의점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갑을 열어 담뱃값을 꺼내는데, 어쩐지 묵묵히 지갑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다지 적지않은 돈이 들어있긴 하지만, 이리저리 나가야할 종이조각들.

처음엔 담배 2갑을 살려 마음먹었는데, 왠일인지 ‘아저씨 담배 4갑 주세요’라고 말해버렸다. 평소에 항상 한갑 혹은 두갑씩만 사던 내가 갑자기4갑을 달라고 하자 점원은 ‘네? 4갑요?’ 라고 한번 확인을 하고 4갑을 건내주었다. 그리고 난 돈을 건네주었다.

확실히 여름이 다가옴을 느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름이 오고야 마는것이다.
하지만 난 흰색 반팔 셔츠를 하나 입었을 뿐이었고 밤공기는 의외로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돌아와서 암실입구쪽에 있는 골판지들이 땅에 붙어있는걸 보고 한번 벽에 다시 붙여봤지만, 땅에 다시 붙는다.

두번정도 그렇게 하다가. 그냥 무덤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담배 한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무감히 스쳐가는 담배맛, 무감히 나의 몸을 스친다. 언제나 그렇듯 거의 일주일째 한번도 쉼없이 돌아가는, 동그마니 소리를 내는 냉각팬 소리, 투닥토다닥 토해내는 키보드 소리, 어딘가 아주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제법 비슷하게 중요할법한 어떠한 젤리같은 덩어리가 들어갈만한 공간이, 그곳에 있어야할 젤리같은 것이 비어있는 공허함을.

그래서, 난 작업실을 재정비하기로 마음 먹는 中이다.

무척이나 무거운 코끼리가 버둥버둥거리며 둥실둥실 떠있는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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