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df_Mutter

My brother Karam.

My brother
Karam

look self, I see you, you see me

look self,
I see you,
you see me

회색, 회색. 혹은 회색.

색(Color)을 제외해버린 빛은 흑과 백으로 구분이 된다.
이 사이의 단계를 명도, 혹은 휘도라고 한다.

컴퓨터에서는 8bit (2의 8승, 즉 256단계)만큼의 스펙트럼 깊이가 있다.
검은색부터 흰색까지의 변화되는 과정이 총 256개가 있다는 소리다.
혹은 흰색부터 검은색까지의 단계가 256단계라는 소리와 같다.

난 아주 어렸을적, 유치원도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검은색, 흰색.
그리고 회색을 무척 아주 좋아했었다.
회색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단지 무겁다던지 우울하다던지뿐만이 아니라 그 회색이라는 그 공간이 무한히 넓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렸을적 어떤날,  멍하게 아스팔트며, 벽이며, 회색빛 하늘이며 그런것들을 하루종일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멍하게 본적이 있었다.

난 그 회색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떠한 감정들을 느꼈는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밝고 유쾌하고 명랑한 감정들은 그다지 많친 않았을것이다.

회색이지만 무한히 흰색에 가까운
검은색이지만 무한히 회색에 가까운.
회색이지만 검은색이나 혹은 흰색에 가까운.

회색.

외형적으로는 온건한 나의 감촉을 느낄수 있다.
그렇게 숨을 쉬고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살고 있다.
회색.

더불어 굉장한 파괴욕구가 나의 내장을 짓으께고 있다.
회색.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내뱉은 한숨.
회색.

예전엔 기분이 좋치 않을땐 작업이 무척 잘 되었던듯하다.
요즘엔 기분이 좋치 않아도 여전히 작업은 잘되지 않는다.
회색.

회색위엔 어떠한 색을 첨가 혹은 썪는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회색빛을 띄고 있다.

그래 여전히 또 레모네이트 타령이다.
하지만 요즘엔 무척 춥기때문에 레모네이드는 좀 힘들듯 하다.
아아.. 그래. 따뜻하게 데운 우유라면 아주 좋을것 같다.
회색.

구원받고 싶다.
갑자기 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팔에는 조금씩 힘이 빠지고 머리는 몽롱해진다.
회색.

싯다르타를 몹시 읽고 싶다. 황야의 이리를 몹시 읽고 싶다.
그리고 싯다르타를 잃고싶다. 그리고 황야의 이리를 잃고 싶다.
욕심이라는건 정말 끝이없다.
지금 나에게 잃는다는것 자체가 가능한 일인가.
읽는것 마저도 힘든 나에게.
회색.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냉각팬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눅눅한 피아노소리, 짧막하고 작은 깊은 한숨소리, 키보드를 누를때 들리는 딸깍 거리는 소리.
회색.

밝고 청명하고 눈부신 그 어떤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냥…
온건히 내가 변해가는것을, 내가 느껴가는것들을, 내가 숨쉬고 있는것들을, 내가 듣는것들을, 내가 맡는 소리와 냄새를, 나의 감정을, 그대로 어떠한 손상(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진 않치만)을 입지 않은체.

그래…
온건히 느끼고 싶다.
‘얇은 막’ 따위도 이젠 그러려니 할 뿐이다.
회색.

바람의 냄새가 느껴진다.
아직 불고있진 않치만.
난…
분명히 느낀다.
바람의 냄새가, 소리가.

그것은 나를 가로질러 머리를 반동강내버릴 태새를 취하고 있다.
아아. 그래. 언제든 오렴. 난 느긋하단다.

눈알이 알알하다.
온몸에 붙어있는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어떤 액체와도 같은 그 질감과 느낌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다.  조금씩 내속으로 침수되어간다.
질감도 변하고 색도 변해간다.

뭔가 한없이 써내려가라!라고 한다면 한도 없이 쓸쑤있을것만 같다.
지금까지 한 소리는 모두 헛소리다.
회색.

내가 잊은게 한가지 있다.
색을 제외한 세계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알수없는 강한 분노가 치솟아 올라온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감이라고, 그런것이라고… 경험이라는것이 나를 아우르듯 알려준다.
난 태연하게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난 지금 박하향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따뜻하게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박은체 바람부는곳에서 담배한개비 물고 별, 소리, 콧등이 시큰하고 시려울정도의 한도 끝도 없는 하늘과 바다, 강, 바위, 들판을 보고 싶다.

잠시 떠나고 싶다.

아아.. 그래.

보통의 경우 살아감에 있어서 귀찮은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한다.

난 근본적으로 어떻게 되먹은건진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정말 게으른데다, 귀찮은것을 싫어한다.

물론 귀찮은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살아가면서 쭉 살아가는 동안 그러한 일들이 생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찮고 짜증나는것은 바로 ‘심리전’이라고 하는 것.

난 머리가 나쁜탓에 이런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다.
게다가 사람관계에 있어서 머리속에서 계산기를 굴려가며 뭔가를 대한다는건 벌써 위장에서 위산이 과다분비되어서 나오는 그런 위장의 쓰림과 따끔함이 느껴지는 뭐 그런것.

아아. 그래 무척 귀찮은 일이다.

내가 아주 대단한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뭔가를 한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건가 싶다.
아아.. 그래 어려운 일인가..

그냥…

오롯히 바람을 맞고 싶은 그런 기분이다.

하늘이 오롯히 있고, 바람이 불어오고.
그냥.. 모쪼록 가만히 서서 불어오는 사람을 머리칼로, 눈으로, 가슴으로, 페속으로, 심장으로, 다리로.. 그렇게 느끼고 싶은. 요즘이다.

아아.. 그래.

셀렉트

사진.

사진을 찍는다는것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흔한 질문 혹은 물음에 대해서 심상적인것을 배제하고 말하자면 내 생각은 그렇다.

찍는다, 현상, 셀렉트, 인화, 전시

이 중에서 셀렉트라는것은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난 셀렉트 할때, 그때야 말로 정말 사진을 찍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금껏 찍어왔던 사진들을 보면서 한장씩 한장씩 셀렉트를 한다. 대부분의 사진찍는 사람이 그렇듯, 자신이 찍은사진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것이다.

열 손가락 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자신의 자신또한 그럴것이라 난 생각한다.

셀렉트 하기 위해서, ‘자신이 느끼고 찍은 사진들’을 한장씩 쳐내고 잘라내고 그렇게 짓이기고 섞이고, 없어지고, 화합되고, 분리되어가는 그 과정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셀렉트 물’을 천천히 보고 다시 다듬어 가면서 또 한장씩 쳐내어가는 그런 고통들.

마지막엔 자신이 ‘선택한(난 ‘느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진들은 온건히 그 자리에 선택되어져 있다.

그것은 그 누구가 한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 스스로 한것이다.

맞은 이야기 인진 모르겠지만,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도 다른 사람이 선택한 사진을 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사진이지 자기 자신의 사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하는 분들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건내자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셀렉트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어라’ 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틀어진것이든, 불투명한것이든, 상실한것이든 그것이 어떻게 되었던간에…

그것은 온건히 자기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다른욕심은 없다.

난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각 전시회 참여자들의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는 ‘그 어떠한것’이 어떠한것인지에 대해서 무척이나 무척이나 두근거리고 있다.

퀄리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것이 아닌..
무릇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는 사진을… 그런 사진들을.
난 기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 생각에 동감하는 몇몇 분들에 대해 드리고 싶은 말씀 또한 그렇다.

난.. 무척 흥분되고 두근거리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것을 보여줄것인가, 그리고 그 ‘셀렉트’된 사진들은 어떠한 사진들일까에 대해서.

그래서.. 이번 전시회 주제는 ‘난사’ 이다.

3미터라는 (아마 참가인원이 늘어나서 2.5미터로 줄어들듯 하지만) 그 좁은 공간이 얼마나 황량하도록 넓게 느껴지는지를 느껴보는것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이 얼마나 그토록 답답할 정도로 좁게 느껴지는가도……..

셀렉트는… 바로 이러한것들도 포함되는게 아닌가..하고 난 생각한다.

루이 암스트롱.

기억은 잘 나진 않치만 아주 어렸을적이었던것 같다.

What a wonderful world.

당시 꼬맹이의 영어실력을 억지로 끼워맞춘 해석은
‘뭐가 끝내주는 세상인데?’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TV에서 나오는 맥주광고중에 ‘그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What a wonderful world.’의 뜻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라고 배우게 될때도 그즈음이었던듯 하다. 시원스러운 보리밭이 지나가고 조개를 굽고, 맥주를 마시고.. 그런 광고였던듯 하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영화 굳모닝 베트남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그것도 TV에서.
전쟁의 포화속에서 죽어가는 군인, 민간인, 시내에서 벌어진 소소한 폭탄테러들, 시체를 치우는 모습, 총을 쏘는 모습속에서
그 노래가 들려왔다.

노래가 끝날무렵 주인공은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위대한 루이 암스트롱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휴대용 CDP를 가방어딘가에 쳐박아 넣고 귓구멍에 이어폰을 박아둔체 음악을 들으면서 길거리를 걷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노래가 나왔다.
순간… 울컥하면서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우연찮게 실황공연 녹화 테잎을 보게 되었다.
흑백의 화면에서 야외에서 대강 급하게 지어진듯한 콘서트장.
앞에 군인들로 보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걸로 봐선
아마 무슨 위문공연쯤 되겠지.

그래… 또 그 노래가 나왔다.
루이는 노래한다.

무심코 화면을 보다, 난 숨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루이의 울고있는듯 웃고 있는, 웃고 있는듯한 울고 있는 눈을, 표정을, 몸을 보았다.

그래… 왠지 저렇게 부를것 같았어.
그래… 왠지 저렇게 부를것 같았어…라고.

내가 꼬맹이 시절에 엉터리로 해석했던 제목.
‘뭐가 끝내주는 세상인데?’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아아… 그래. 홧 어 원더풀 월드지’라고 말하며 맥주며 위스키며 소주며 그런것들을 들이부었던때가.
그리고 ‘홧…… 어…… 원더풀 월드…….인거지’ 라고 말하며 지났던 시간들.

하지만.. 그런 생각속에서 뭔가 한가지 부서져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왠지 저렇게 부를것 같았어’가 아닌….
있는 그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것이었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2월 11월 초순 새벽에 문득 이유없이 ‘그 노래 ‘를 듣고나선 난 아무 감흥이 없다.

아무 감흥없이 그냥 시큰한 눈물뭉치가 눈가에 어른거릴 뿐이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The bright blessed the day
And the dark say good night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The colors of the rainbow
so pretty in the sky
Are also on the faces
of people going by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g "How do you do?"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ever known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Yes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oh yeah

난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

‘위대한 루이 암스트롱이었다고…’

소리.

소리라는것은 공기 밀도차에 따른 진폭의 변화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다.
그것은 귀에서 소리가 모아지고 증폭이 되어 얇은 판막같이 되어있는 고막을 진동(올바른 단어선택은 아니라고 하지만 난 왠지 ‘공진’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진다)시키고 그것이 신경계를 거친후 뇌로 전달이 된다.

뇌에서는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것이 어떠한 종류의 ‘소리’인가에 대해서 판단을 한다. 물론 판단 기준은 개인의 경험 및 인식, 지각력, 인지도 그리고 심리상태에 따라 다르다.

소리는 여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떠한 소리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한 리액션을 낳게 만든다.

요코하마 장보기 기행(국내판 제목 : 카페 알파)에서 나왔던 그 가슴 저린 한 마디.

코코네 : 알파씨, 은유나 비유같은게 아니라 우리는 소리나 냄새로 만들어져 있어요.
알파 : 응, 알아.

어찌 되었건, 소리라는것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있다.

소리는 기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호의 약속과 규칙을 만들어서 언어라는것이 성립되었다.
단순히 언어뿐만이 아니라 음악에서도 말이다.

난 가끔 사람의 말소리를 음악같이 듣는때도 있다.
노래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그냥 평소에 이야기 하는 그냥 그런 말소리들을 말이다.

반대로 음악이 사람의 말소리처럼 ‘들릴때’도 있다.

완벽한(난 이런 단어는 싫어하지면 왠지 강조하고 싶다) 오해의 결정체이며 이해의 결정체라는 어설픈 생각이 들때도 있다.

어찌 되었건 좋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것은.
사람의 온기는 오해의 여지가 없다.

몸은 정직하다고 난 생각한다.

난 오늘 아주 차가운 소리를 내고, 차가운 소리를 듣고
그 후 따뜻한 ‘몸의 온기’를 느꼈다.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겨울.

물론 지금 10월달(말이라곤 해도) 겨울은 아니다.

서울쪽은 벌써 영하 날씨라곤 해도 부산은 아직 영상의 온도.

제법 으슬으슬하게 춥기도 하고, 바람속에 겨울 냄새가 난다.
지상으로 다니는것 보다는 아무래도 지하도쪽으로 다니는데 덜 춥다.
그러다가 계단을 차박차박 올라가 지상으로 올라오면 냉냉하고 상큼한듯한 겨울냄새가 난다.

약간 두터운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건강한지 어쩐진 모르겠지만 아직 가을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상대적으로(과연 정당한 단어인진 모르겠지만) 따뜻해지는것이 있다.

사람의 온기, 따뜻한 시선, 자그만 배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동안에 보이는 밥솥에서 올라오는 밥물 냄새.

난… 지금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추신 : 하지만 역시 겨울은 싫다. 아무래도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에겐 특히 더 그렇겠지… ;;;

짜증날때…

대체적으로 ‘짜증이 날때’ 라는것은 어떠한 경우 자신의 의지나 바램과는 다른 상황 혹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라는 뜻의 준말인듯 하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짜증난다 라던지(시원하고 싶은데) 너무 추워서 짜증난다던지 (따뜻하고 싶은데) 뭐 그런것 말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도 그렇고, 살아감에 있어서 또함 그럴듯 하다.

혹시나 이런 경험 한적이 있는가?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라

심장이 차가워지는 느낌.
심장에서는 생명유지를 위해 계속 펌프질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그 펌프질때문에 토해지는 핏덩이들이 차갑게 몸을 돌고 있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 차가운 냉기는 허파를 돌고 기관지를 돌아 기도로 올라가서 목젖 언저리까지 차갑게 만든다.

가슴은 뜨겁지만, 몸은 차가운 그런 상태…

‘비가 온 뒤에 생겨나는 작은 물줄기들
이름을 붙일새도 없이 며칠만에
대지의 품으로 사라지는 것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사랑했노라’

갑자기 이 구절이 절절하게 가슴속 차갑고도 뜨거운 눈물이 되도록 느껴지는것은 단순히 나의 기분탓이려니 하고 위무하고 싶은것이 나의 오늘 상태이다.

少年

내가 30대가 되기전에 만들고 싶은 연작이 하나 있다.

그리고 같은걸로 30대가 된 후 언젠가 만들고 싶은 연작이 하나 있다.

© Wonzu Au / No use without prior permission other than non-commercial use. / 비상업적 용도 이외의 사전 허가없이 사용을 금함.